채림彩林 ::: 3대를 이어온 전통의 전문필방

작성일:2018-03-31 23:35

천연 안료와 화가의 건강

글쓴이 : 채림彩林

저 오늘, 굉장히 무섭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벚꽃 피는 봄에 무서운 이야기라니 여름도 아직 멀었는데요.

다름 아니라 오늘,

경면주사를...약으로 사용하면 좋다고 권해주시는 분을 만났거든요.

그게 뭐?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아마 저희 채림 고객분들은, 경면주사라고 하면 익숙하게 알고 계실 거예요.

경면주사를 약으로!

물론 <동의보감> 외에도 여러 한의학 서적에서 경면주사를 약으로 사용하는

처방이 나오기는 합니다. 초록친구한테 검색해보면 금방 찾으실 수 있어요.

근데 그건 의술이 높으신 연구자가 해주시는 말씀이구요.

제가 재료학을 공부하면서 수박 흝듯이 배운 바로는,

경면주사는 황화수은 성분이 주성분인 광물입니다. 광명단 또는 주사라고도 하구요.

오늘날 가장 무서운 광물로 취급되는 납성분이 가득한 광물을 치료제로

추천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뭐 독은 약과 통한다는 말씀인 건가 라고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더 열심히 들어봤어요.

자신있게 말씀해 주신 분의 직업이 한의사는 아니신 거 같고요.

그래서 더 신뢰도가 떨어진 걸까요.

사경을 하시는 분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시던데,

아무리 들어도 참으로 위험하고 무책임한 말씀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아프면 한의원도 가고 침도 열심히 맞고, 한약도 잘 먹습니다.

(고백하자면 한의원 좋아해요. 보약도 사랑하구요.)

그렇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한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받았으니

마음놓고 신뢰하는 경우라 그런 거거든요.

집으로 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각종 광물을 물감의 원료로 쓰고 계시는 우리 고객분들 중에서

혹시 재료를 다루시는 과정에 익숙해지셔서 천연 안료의 위험에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되고 계시는 건 아닐까 하구요.

제가 원래 솥뚜껑 꼭지만 보고도 '자라다!'하고 외치는 겁쟁이라서 그런 거겠죠.

제가 경면주사를 치료제로 권하시는 한 분을 우연히 뵙고서 과하게 놀란 거겠죠?

만약에 경면주사의 성분을 모르시는 분들께 그런 이야기를 하셔서

행여나 실행하시는 분이 생기신다면...하고 과하게 상상해서 그런 거겠죠?

천연 재료를 물감의 원료로 사용하실 때 항상 조심하시면서 다뤄주세요.

후세에 남을 그림도 좋지만, 여러분의 건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명하고 유용한 말이 있지 않나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

잘 알고 계시다시피 물감의 성분에 중독된 경우는, 서양의 화가 중에서도 있습니다.

휘슬러가 사용했던 당시에 하얀색 물감의 원료로 사용되었던

연백은 납 성분으로 만든 물감이라 결국 화가 자신이 납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일찌기 옛 동서양의 여인들이 하얗고 창백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위해서

납가루로 얼굴을 하얗게 꾸미다가 납중독으로 사망했던 슬픈 시절도 있었구요.

다행히도 지금 물감의 원료로 사용되는 화학 안료들은,

가능하면 인체에 무해한 것을 사용하도록 선별된 원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집니다.

안전한 화학안료는 사용되지만, 독성 있는 화학 안료로 밝혀지면 물감 원료로

사용이 금지됩니다.

천연의 원료들은, 아름다운 색만큼이나 감춰진 독성도 있기 마련입니다.

항상 조심해서 다뤄주세요.

분쇄작업 하실 때는 번거롭다 마시고 마스크도 꼭 착용해주시구요.

요즘 천연광물 석채에 관심 많으신 분들을 전보다 더 자주 뵙습니다.

병을 고치려면 경면주사를 넣어서 가지고 다니라는 말씀을

진지하게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한 번쯤 이야기 드리고 싶었습니다.

건강을 염려해주시는 고객님의 마음은 고맙고 감사하게 잘 받았습니다.

다 읽고 나니 도대체 어디가 무섭냐 싶으시죠.

그러게요. 분명히 글 쓰기 시작할 때는 무서웠던 거 같은데요.

그럼 마무리를 이렇게 바꿀까 봐요.

봄에 들려드리는 굉장히 무섭지도, 놀랍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들 알고 계셔서 시시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한 봄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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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제 올린 글을 읽고서 생각지도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어본 언니쌤이 계셔서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언니쌤 한분이 카톡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의 끝이 뭐고? 어떻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나 말이다!"

아, 대화의 끝은요.

처음에는 멀찍하게 서서 듣고 계셨던 여자분이 있었어요.

점차 그분 옆으로 가까이 다가오셨는데요.

그러다가 갑자기 바빡 다가오셔서 어깨를 붙이시고는

'그믄흐(그만해,로 추정되었습니다)' 하는 복화술과 동시에

'팔꿈치로 옆구리 찌르기' 신공을 순식간에 펼치셨어요.

그리고 놀랄 틈도 없이 저도 그분들도 하하하 웃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원래 살짝 당황하고 어색한 순간에는 웃음이 최고 아닐까요.

그렇게 대화는 봄꽃처럼 따듯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는 언니쌤이 궁금해하셔서 실없이 덧붙여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