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림彩林 ::: 3대를 이어온 전통의 전문필방

작성일:2018-04-04 12:25

붓과 친해지기_붓을 씻을 때는(3)

글쓴이 : 채림彩林

붓에 묻어 있는 먹물이나 물감 색을 깨끗하게 빼내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개운하다고 표현하기도 하시구요.
붓을 처음 상태처럼 깨끗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신 걸 느낍니다.

좀 생뚱맞게 들리시겠지만
붓의 기본 원리는, 모세관 현상이라고 합니다.
붓을 물감에 적신다는 것은
모 가닥을 타고 색을 내는 작은 질료인 안료 혹은
경우에 따라 염료가 끝에서 위로 올라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라고 해요.

그것을 다른 곳(종이 혹은 그림을 그리는 곳)에 옮기는 역할이
붓의 목적이고 쓰임새입니다.

그런데 먹물과 물감의 원료가 되는 색을 내는 안료와 염료 중에는,
생각보다 작은 아주 미세한 것들이 있어서
붓의 털에서 떨어지기 어려운 것들도 있고
붓의 모를 물들이는 원료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다 씻어내고 처음 모의 색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붓을 씻으시고 붓 모를 가볍게 흝어냈을 때 약간의 먹색이
배어나오는 정도면 충분히 씻어내신 거라 봐도 무방합니다.

과하게 붓을 씻는 과정에서 毛에 있는 천연의 기름기가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 기름기가 없으면 毛의 생명력이 다해서 먹물이나 물감을
붓이 잘 머금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붓을 많이 씻다보면 많이 사용한 붓과 동일한 毛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고
이해해 주세요)

세제 비누 다 안 됩니다.
뜨거운 물도 안 되구요.
지나치게 찬 물도 곤란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아껴 입으시는 울 스웨터와 모직 옷 그리고
붓은 같은 집안(!), 일가입니다.

조금만 소중하게 다뤄주세요.
그러면 함께 하시는 동안 좋은 친구가 되실 수 있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