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림彩林 ::: 3대를 이어온 전통의 전문필방

작성일:2018-04-02 15:23

불교박람회 잘 마무리했습니다.

글쓴이 : 채림彩林

안녕하세요.

채림필방입니다.

와주신 여러분 덕분에 불교박람회 잘 마쳤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 불교박람회에서 저희끼리 속닥속닥 준비한 컨셉트는

<'사경하는 삶'에서 작은 기쁨이 되는 채림>이었습니다.

몇년 전, 채림의 황금색 물감으로 남편이 사경해 두었던 '천수경' 사경공책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보신 노트가 발원문을 보니 2011년에 쓴 거더라구요.)

작은 붓과 채림의 황금색 접시물감 하나

그리고 사찰 근처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경노트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간단한 준비.

정말 많은 분들을 나흘간 불교박람회에서 만났습니다.

그 많은 분들 가운데 제 기억에 남는 분이 있습니다.

둘째날 6시 폐관 시간이 다 되어서 오셨던 어르신이 계세요.

대모산이라도 다녀오신 걸까요. 술도 한 잔 하셔서 기분도 좋아보이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에게 줄 붓을 골라달라고 하셨습니다.

토요일에 손녀가 오는데, 꼭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어르신께서 원하시는 가격과 붓의 크기가 맞질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제 설명만 길어지게 되었어요.

저는 답답하고 어르신도 마땅치 않아 갈등하시던 어느 순간,

어르신 눈에 저희 금색 물감으로 쓴 사경 노트가 들었나 봅니다.

"오, 이거 사경 아닌가. 이 물감으로 쓴 건가?"하시면서 크게 관심을 보이셨어요.

"내 나이가 올해 여든넷인데. 사경 이거 좋아요. 마음에 평안이 와, 이걸 하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 '마음에 평안이 와!'하시던 음성을 전해드릴 방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속 깊은 곳에서 끌어내는,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그 깨달음을 상대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감정이 저한테도 건네졌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물감 사용법을 찬찬히 물으시고,

황금색 물감과 면상필을 구입해서 기분좋게 손을 흔드시며 떠나셨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실 손녀딸에게 사주려고 하시던 분 값의 2배가 넘게 쓰신 거예요.

원래 1만원 가격의 붓도 비싸다고 마다하셨더랬거든요.

어르신은 처음에 저희 부스에 오셨던 목적은 싹 다 잊으셨어요.

84살 - 11살= 73살 나이차가 나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주고 싶었던 붓 대신에

자신을 위한 '붓과 금색 물감'을 사셨습니다.

그런데요. 제 눈에는 손녀딸 선물은 어느새 잊으신 채로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챙기시는 어르신이 멋지게 보였습니다.

'내 마음의 평안은 내가 지킨다.'

물론 제가 아직 인생을 잘 몰라서 그런지 괜한 실망이 잠시 들었던 것도 고백하고 싶네요.

'여든 넷이 되어도 마음의 평안은 저절로 오지 않는 것인가.'

역시 마음밭은 평생 갈아야 하는 거구나.

그런 거였어.

제가 꼽아본 여든네 살의 시간은,

1932년 출생 (일제강점기)-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청소년, 청년시절로 50년대를 보내고,

-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지나서

IMF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겪은 시간이더라구요.

웃으시면서 "여든넷인데, 내가 일을 안 하고 놀아"하고 건네셨던 첫인사 말씀.

이번 박람회에서 만난 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입니다.

내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어르신.

올해 열심히 준비해서 신제품 물감 만들어서 어르신의 여든다섯 마음의 평안에

저희 채림필방도 살짝 힘이 되어 드리면 기쁘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뵙겠습니다.